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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의 호방함 - 사나이의 장쾌함 - 대장부의 큰 행사

by 한갑부 2021. 1. 2.

책상물림들이 그 무슨 호방한 군자의 큰 그릇을 말하고

대장부의 세찬 기세를 말할 때 많이 하는 말이

쓸데없이 백두산 돌막을 다 칼 가는데 쓴다느니

두만강 용량의 물을 다 마시는 말이 있다느니 하며

풍을 치고 시답잖은 실력으로

벌레 같은 글자 조각을 맞추어 쓰고는 명문이라고 하는데

진짜 대장부 기세를 살피면 이렇다.

 

퇴계 이황이 기남자(奇男子)

심지어 나라의 그릇이라 칭한 국기(國器) 임형수를 기억하며 쓴 글

임형수(1514∼1547) 17세 진사시 21세 문과 급제

조선의 전형적인 사대부인 문무겸전(文武兼全)의 선비이다.

(원래부터 선비는 문약(文弱)한 글쟁이가 아니다.)

내직에서는 병조좌랑 외직으로는 당시 최북방인 육진의 회령 판관을 역임하였고

다시 내직에서 문관 당상관인 부제학을 지냈다.

 

후배 이황과 술 한잔 하며 나눈 이야기를

후일 퇴계가 임형수를 기리며 기억하여 적기를...

 

산이 하얗게 눈이 쌓일 때

검은 돈피 가죽옷을 입고 흰 깃이 달린 기다란 화살을 허리에 차고

팔뚝에는 백근짜리 각궁을 걸고 메고

천총마를 타고 채찍을 휘두르며 계곡으로 달려들어서면

사나운 바람이 골짜기에서 일어나 초목이 진동하는데

그때 느닷없이 멧돼지가 놀라 일어나 길을 헤메고 있을 때

곧 활을 힘껏 잡아당겨 쏘아먹이고 곧 말에서 내려

칼을 빼어 이놈을 죽여 잡고 늙은 상수리나무를 쪼개 불을 놓아

기다란 꼬챙이에 그 고기를 꿰어 구우면

기름과 피가 지글지글 끓으면서 뚝뚝 떨어지는데

의자에 걸터 앉아 고기를 저며 먹으며

큰 은대접에 술을 가득히 부어 마시고

얼근히 취할 때에 하늘을 쳐다보면 골짜기의 구름이 눈이 되고

조각조각이 솜이 되어 날아

취한 얼굴 위를 펄펄 스친다네

이런 재미를 자네는 아는가?

이 글을 보고 후일 홍명희가 소설 임꺽정에 쓰기를

 

눈이 산중에 가득히 쌓인 때

백근 강궁을 팔에 메고 천금 보도를 허리에 차고 철총마를 칩떠 타고

산골로 달려들어갈 제

앞에서 큰 돝이 튀어나와

어디로 갈지 몰라서 함부로 뛰는 것을 대살에 쏘아 누이고

말에서 내려와서 칼로 참나무를 베어젖혀 화톳불로 놓고

긴 꼬챙이로 돝고기를 구워가며 술을 마시다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뒤에 얼굴을 치어들면

어느 동안 눈이 시작하여

면화 같이 눈송이가 술 취한 얼굴에 선득선득 떨어지는 맛이라니.

 

자네들 같은 고리삭은 선비로야 꿈엔들 맛볼 수가 있나?

자네들 장기란 것은 말하자면 조충소기(彫蟲小技)이지.

하고 거침없이 크게 웃으며 무릎을 치니...

 

옛글을 살피며 배우는 것

한마디로 대장부의 호탕함은

캠핑장 가서 참숯 피워 불판 걸고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한잔 쩐지면 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