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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 vs 한자혼용" 한자병기(倂記)에서 그 답을 찾는다.

by 한갑부 2020. 11. 30.

한국말을 민족의 삶을 담은 그릇이라고 말한다면 한글은 우리의 문화를 담은 그릇으로 대한민국의 자주적 주체성과 민족 존립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문자로서의 그 우수성과 창조성은 세계 유수의 언어학자들에게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답다는 평과 함께 세상 모든 말의 표현이 가능한 문자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한글전용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인식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국어의 고유문자인 한글을 세종께서 ‘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반포하신 것이 1446년 이라는 것에 우리는 주목하여야 한다.

5000년의 우리 민족 역사에서 한글 사용은 고작 600년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훈민정음의 반포 이후에도 대부분의 민족 기록유산은 한자로 작성되어 보존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실례를 들어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을 한글전용으로 표기하였을 때 과연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한자의 뜻 새김 없이 이해가 가능한가?”를 묻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에도 한자를 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증적 해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IT 세상에서 버려진 문자로 인식되는 한자의 폐해에 대해서도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일례로 핸드폰 문자메세지의 한자입력을 경험해 보았다면 한글의 소중함이 더욱 간절하고 새로울 것이다.

문자란 민족 역사의 큰 물줄기를 세세히 기록한 것이다.

또한 문자는 당 시대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투영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국수적 사대론으로 한자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시대도 극단적 민족론으로 한글만을 고집하는 배타성 짙은 사회도 아니다. 다양한 동서양의 문화를 흡수하고 다시 만들고 발전시켜 새로움을 창조하여 널리 전파하고 있는 시기이다.

우리 사회의 문자는 이미 한글과 한자를 넘어 영어라는 3대축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언어가 문화 공동체에 녹아들고 있음을 인식하여야 한다. 충북 괴산의 농가에서 베트남어로 부녀회 모임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작은 문화공동체의 다양한 설정과 유입의 실증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다.

중요하게 인식하여야 하는 것은 이미 세상이 한글전용이라든지 한자혼용이라는 문자표현법에 제약을 두기에는 너무나도 빠르고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갑부는 한자혼용의 방법적 한자병기, 나아가 모든 언어에 대한 병기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기록으로 남는 문자의 유효성은 정보 전달에 있다. 이런 성상에 있어 한자혼용의 가장 확고부동한 유효성은 한글로는 의미 전달이 부정확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데 있다.

조상이 물려준 유구한 역사의 지혜에서 장대한 유산을 찾아내어 누군가에게 이를 전달하고 알리려 할 때 한자혼용은 이루어 져야한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공시’라는 문자의 의미전달이 안될 때 우리는 ‘공시(公示)’라 표현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한자병기다. 또한 모든 언어와 어휘에 있어 한글로 정보의 전달이 어렵다면 괄호 안에 그 문자로 표현하는 병기를 선택하는 것이 옳으리라 판단한다.

소위 제대로 된 한자사용이라 하는 “은, 는, 이, 가”를 뺀 나머지는 한자여야 맞다는 것은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우리 언어의 약 70%가 한문이라는 설득력 있는 말에 아시아의 한자문화권의 중심3축 중 중국은 약자인 간자를 일본 또한 약자인 가나(Kana)를 사용하고 있음을 상기하라 하고 싶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서 단순하게 한글을 전용하여 정확한 의미전달이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필요에 의한 한자기초교육을 생각하고 한자병기를 실천해 나아간다면

더불어 병기를 통하여 다른 언어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지금 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는 말로서 결어를 대신한다.